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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문화

달빛 아래 벌어지는 장례 무용 – 서아프리카 바우레족의 밤 장례

죽음을 슬픔으로만 바라보는 문화가 있는 반면, 삶의 완성을 축복하고 영혼의 여정을 기념하는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공동체도 있다.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 거주하는 바우레(Baoulé)족은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태양이 지고 달이 떠오르는 밤, 마을 광장에 모여 망자를 위한 장례 무용을 펼친다. 북소리와 노래, 춤이 어우러진 이 장례 의식은 단순한 추모가 아닌, 망자의 영혼이 조상의 세계로 무사히 넘어가도록 돕는 영적 의례이다.

바우레족은 아칸(Akan)계 부족 중 하나로, 전통적인 조상 숭배 사상과 영혼 순환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장례 의식은 ‘고로(Gôrô)’라고 불리는 밤 의식으로 진행되며, 낮이 아닌 어둠의 시간에만 치러지는 신성한 장례 무용은 지금도 민속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의 깊은 관심을 받고 있다. 본문에서는 바우레족의 장례 문화가 지닌 철학, 장례 무용의 구체적 절차, 밤에만 열리는 이유, 그리고 현대화 속 전통 유지 노력까지 네 문단에 걸쳐 살펴본다.

 

달빛 아래 벌어지는 장례 무용 – 서아프리카 바우레족의 밤 장례

 

1 . 고로(Gôrô): 바우레족의 전통 장례 무용의 철학

바우레족의 장례 무용 ‘고로(Gôrô)’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닌, 영혼을 조상의 세계로 안전하게 인도하기 위한 정교한 의식이다. 바우레족은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조상들이 머무는 세계로 향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여정은 항상 순탄하지 않으며, 영혼이 길을 잃거나 마을에 머물러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장례 무용은 영혼의 방황을 막고,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하는 영적 나침반의 역할을 한다.

이 춤은 마을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행사이며, 보통 죽은 자의 집안이 주도해 준비하고, 전통 음악가, 무용수, 제사장이 동참한다. 춤의 구성은 점진적으로 고조되며, 음악의 리듬과 함께 무용수들의 움직임도 격렬해진다. 이 과정에서 참석자들은 망자의 영혼이 몸을 떠나는 순간을 함께 느끼며,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고로는 단지 망자를 위한 행위가 아닌, 산 자의 마음을 정화하는 정서적 장례 행위이기도 하다.

 

 

2 . 밤에만 열리는 이유: 어둠과 죽음, 그리고 신성함

바우레족의 장례 무용이 밤에만 치러지는 이유는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깊은 상징성을 지닌다. 이들은 밤을 죽음과 가장 밀접한 시간으로 인식한다. 낮은 삶과 현실을 상징하고, 밤은 죽음, 기억, 그리고 영혼의 세계를 상징한다. 따라서 장례가 밤에 치러져야만 영혼이 사후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또한 어둠은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우레족은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순간, 조상의 세계와 이승이 일시적으로 연결된다고 믿는다. 이때 장례 무용은 영혼과 조상이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창조하며, 춤을 통해 영혼이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되는 통로를 만든다.

실제로 고로는 달빛이 비치는 개방된 공간에서 진행되며, 불빛은 최소한으로 유지된다. 북소리는 먼 거리에서도 들릴 정도로 크고 웅장하며, 이는 조상의 세계에 영혼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로 해석된다. 이처럼 바우레족의 밤 장례는 죽음과 자연, 조상과 자손이 어우러지는 복합적이고 상징적인 행위다.

 

 

3 . 무용의 구성과 의례적 상징들

고로 의식은 다양한 단계로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정화의 춤으로 시작된다. 이 춤은 죽음이 불러올 수 있는 부정한 기운을 몰아내기 위한 춤이며, 주로 여성 무용수들이 참여해 조용한 발동작과 팔의 움직임으로 공간을 정화한다. 이후 이어지는 환영의 춤은 조상의 영혼을 마을로 초대하는 과정으로, 북소리에 맞춰 빠른 발동작과 회전이 반복된다.

무용수들은 전통적으로 동물 가면, 조상 얼굴을 형상화한 나무 가면, 깃털과 조개 장식이 달린 의복을 착용한다. 이 가면은 단지 외형이 아닌, 조상의 혼을 불러오는 매개체로 여겨지며, 무용수가 가면을 쓰는 순간 신성한 존재로 변신한다고 여긴다. 이 무용은 현실과 초월을 연결하는 상징적 다리가 되며, 가면과 춤의 조합은 의례 전체의 에너지 중심을 형성한다.

마지막으로는 이별의 춤이 이어진다. 이 춤은 조용한 멜로디와 함께 망자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부르며, 영혼이 이승과 완전히 이별하도록 돕는 마무리 의식이다. 이 춤이 끝나면 고로는 종료되고, 가족들은 망자가 영혼의 문을 넘어 조상의 품으로 들어갔다고 믿는다.

 

 

4 . 문화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는 전통

현대화와 종교의 확산은 바우레족의 전통 장례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파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는 고로 의식이 이단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며, 도시화로 인해 밤 시간의 공동체 모임이 어려워지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바우레족 공동체는 이 전통을 자신들의 정체성과 문화적 뿌리로 인식하며 지키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고로 장례가 문화 축제와 연계되어 외부인들에게 소개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장례의 모든 절차를 기록하고 아카이빙하여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으며, 무용의 일부를 공연 예술로 발전시켜 계승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고로가 단지 장례 의식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적 예술과 공동체 정체성의 핵심 콘텐츠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고로는 여전히 바우레족의 삶과 죽음, 영혼과 조상을 잇는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들이 고수하는 밤의 장례 무용은, 오늘날 죽음을 감추고 회피하려는 현대 사회에 삶과 죽음을 더 가깝게 받아들이는 지혜를 전달한다.

 

 

결론 : 춤으로 완성하는 삶의 마지막 인사

바우레족의 밤 장례 문화는 단순한 장례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묶는 예술이자 철학이며, 영혼의 귀향을 돕는 신성한 춤이다. 달빛 아래 벌어지는 무용은 망자를 위한 이별의 춤인 동시에, 산 자에게는 죽음을 두려움보다 이해와 존중으로 받아들이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이 장례 문화를 통해,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며, 공동체 안에서 슬픔을 어떻게 희망으로 전환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바우레족의 밤 장례는 결국, 영혼이 조용히 떠나는 밤, 남겨진 자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이별을 춤추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춤은 세대를 넘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