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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문화

죽은 자와 함께 먹고 마신다? 페루 안데스 산맥 부족의 장례 풍습

페루 안데스 산맥의 험준한 고지대에 자리한 원주민 부족들은 대를 이어 내려온 고유한 문화와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이 지역에 사는 케추아족과 아이마라족, 그리고 다른 소규모 부족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연과의 조화, 조상 숭배, 영혼과의 지속적인 연결을 중심으로 한 삶의 철학을 발전시켜왔다. 그 중심에는 죽음을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이는 독특한 장례 문화가 자리한다. 이들의 장례 풍습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죽은 자와 함께 먹고 마시며 교감하는 의례이다. 이 풍습은 단지 상징적인 수준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유골이나 미라 상태의 시신을 의식 자리에 함께 배치하고, 음식을 나누며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행위는 현대인의 시선에는 충격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영혼과 조상과의 연결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안데스 고지대 부족들에겐 아주 자연스러운 행위다. 이 글에서는 안데스 산맥의 독특한 장례 풍습 중에서도 **‘죽은 자와 함께 먹고 마시는 의식’**을 중심으로, 그들의 죽음관, 의식의 실제 과정, 문화적 의미, 그리고 현대에서의 변화까지 4개의 문단으로 나누어 자세히 살펴본다. 이 의식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삶의 연장선으로서 기념하고 환영하는 인간 문화의 놀라운 형태를 보여준다.

죽은 자와 함께 먹고 마신다? 페루 안데스 산맥 부족의 장례 풍습

 

1. 죽음은 끝이 아니라 순환의 시작

페루 안데스 산맥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죽음을 단절이나 상실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생애는 자연의 주기와 같이 반복되며, 영혼은 육신을 떠난 뒤에도 공동체와 자연 안에서 계속 존재한다는 순환적인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관념은 고대 잉카 문명의 영향 아래에서 더욱 체계화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부족의 정신문화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특히 케추아족은 모든 생명체가 파차마마(Pachamama, 대지의 어머니)의 품에서 태어나고, 다시 그 품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따라서 인간의 죽음은 영혼이 땅으로 흡수되어 공동체와 자연의 일부가 되는 신성한 변환 과정이다. 이러한 믿음은 장례 풍습 전반에 영향을 미쳐, 죽은 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와 함께 존중하며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죽은 자의 유해를 정성스럽게 보존하고, 특정 시기마다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는 행위는 단순한 전통이 아닌 생과 사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 풍습은 인간의 삶이 개인적인 여정이 아니라, 조상과 후손, 자연과 사회가 얽힌 순환적 이야기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 죽은 자와의 식사 의례 ‘다이아 데 로스 디푸토스’

안데스 산맥의 장례 풍습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의식은 바로 매년 열리는 **‘다이아 데 로스 디푸토스(Día de los Difuntos, 망자의 날)’**이다. 이 날은 단순히 죽은 이를 기억하는 날이 아니라, 실제로 죽은 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음식을 나누는 축제의 날이다. 케추아족과 아이마라족은 이 날을 위해 조상의 유골이나 미라를 꺼내 정성스럽게 닦고, 옷을 갈아입히고, 머리에 꽃장식을 하거나 해골에 화려한 모자를 씌우는 등 죽은 자를 환대하는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이후 가족들은 유골이 놓인 자리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앉아, 죽은 자를 포함해 함께 음식을 먹고 마시는 ‘공동 식사 의례’를 거행한다. 이때 제공되는 음식은 보통 감자, 옥수수, 고기 요리, 코카잎, 그리고 죽은 자가 생전에 좋아했던 특별한 음식들로 구성된다. 음식은 실제로 유골 앞에 놓이거나 입가에 조금씩 뿌려지며, 죽은 자가 함께 먹는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가족 구성원들은 죽은 자에게 현재 가족의 이야기, 마을 소식, 그리고 손주들의 성장과정까지 일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통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추억 회상이 아니라, 실제로 조상의 영혼이 곁에 있다고 믿고 정서적 연결을 체험하는 신성한 시간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음악을 연주하거나, 죽은 자와 함께 전통 춤을 추는 퍼포먼스도 포함된다.

 

 

3. 안데스 장례에서 나타나는 자연과의 조화

안데스 고산지대의 장례 문화는 단지 인간과 조상의 연결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바람, 구름, 산과 강을 따라 흐르며 자연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특히 죽은 자와의 식사 의례 중에 흔히 볼 수 있는 의식 중 하나는, 음식의 일부를 바람을 향해 날려 보내는 행위다. 이는 죽은 자의 영혼이 바람을 타고 음식을 받아들이며, 이 세상에 잠시 머물 수 있도록 돕는 상징적인 행위다. 이 지역 사람들은 죽은 자의 존재가 바위, 나무, 들판, 심지어 날씨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믿기 때문에, 장례와 추모 의식은 반드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설계된다. 유골은 보통 마을 외곽의 바위 틈이나 높은 언덕, 자연 동굴 속에 보존되며, 이는 영혼이 자연과 일체화되어 공동체를 지켜볼 수 있는 자리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믿음은 안데스인들에게 죽음을 두려움이나 금기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은 더 넓은 자연의 순환 안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며, 살아 있는 이들과 끊임없이 이어진 유대 속에 존재하는 상태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죽은 자와의 식사는 단지 문화적 전통이 아니라, 생명과 영혼의 상호 작용을 축하하는 신성한 예식이다.

 

 

4. 전통의 변화와 현대 안데스 사회의 대응

오늘날 안데스 고산지대의 전통 장례 풍습도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적지 않은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도시화와 종교적 변화(가톨릭 영향), 정부의 공중보건 기준 강화 등으로 인해, 공공장소에서 유골을 보관하거나 시신을 직접 노출하는 의식은 점차 제한되고 있다. 또한 젊은 세대 중 일부는 이러한 전통을 비위생적이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문화적 정체성의 회복과 조상의식에 대한 재조명 움직임도 활발하다. 일부 공동체는 전통의 핵심 의미를 유지하면서, 보다 현대적인 방식으로 의식을 재구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라를 대신해 조상의 초상화나 상징물을 놓고 음식을 차리는 방식, 혹은 죽은 자에게 편지를 써서 바람에 날리는 의식 등으로 변화하고 있다. 페루 정부나 문화재청 또한 이러한 전통이 갖는 문화유산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으며, 축제나 문화행사로 장례 풍습을 전시하는 방식으로 계승을 장려하고 있다. 안데스 사람들은 여전히 죽은 자와의 연결을 중요하게 여기며, 삶과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 공존이라는 인식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결론 – 죽음과 함께하는 삶, 공동체의 영적 연결

페루 안데스 산맥의 부족들이 보여주는 장례 문화는 단순히 과거의 풍습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이 자연과 조상, 공동체와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깊은 철학적 의식이다. 죽은 자와 함께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 풍습은 생존자에게 위안을 주는 동시에,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며 공경하는 삶의 방식이다. 죽은 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바람 속에서, 대지의 숨결 속에서 살아 숨 쉬며, 가족의 삶을 지켜보는 존재로 남는다. 안데스 부족들의 장례 풍습은 죽음을 두려움에서 경외로, 단절에서 순환으로 전환하는 문화적 지혜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들의 전통을 통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자세인지 다시금 성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