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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문화

망자의 혼을 새로 만든 악기에 담는다 – 에콰도르 부족의 유골 악기 장례식

에콰도르 안데스 산맥의 깊은 밀림에는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소수 원주민 공동체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자연과 조상, 영혼 사이의 연결을 무엇보다 중시하며, 삶의 시작과 끝을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맞이한다. 그중 일부 부족들은 고인이 죽은 뒤, 시신을 화장하거나 땅에 묻는 대신 유골을 이용해 악기를 제작하고, 이를 연주하는 장례 의식을 거행한다. 이 독특한 장례 풍습은 외부 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망자의 혼이 소리로 환생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오늘날까지 일부 부족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장례 의식은 단순한 장례를 넘어, 죽은 자를 기억하는 가장 예술적인 방식으로 해석된다. 고인의 유골은 장구나 플루트, 심지어 현악기와 같은 악기의 일부로 가공되어 후손들의 손에 쥐어지고, 장례식과 제사 때마다 연주된다. 이는 단지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고인의 영혼이 공동체 내에서 계속 숨 쉬며 새로운 형태로 존재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번 글에서는 이 장례 풍습의 유래와 철학, 실제 제작 과정과 의식 절차, 공동체의 기억과 연대 방식, 그리고 현대 사회 속에서 이 전통이 어떻게 계승되고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망자의 혼을 새로 만든 악기에 담는다 – 에콰도르 부족의 유골 악기 장례식

 

1. 혼을 불어넣는 장례 – 유골 악기의 기원과 의미

에콰도르의 산간 및 밀림 지대에 거주하는 일부 원주민 부족 특히 사리야쿠(Sarayaku), 와오라니(Waorani), 치추아(Chichua) 부족은, 죽은 자의 혼이 자연 속으로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리라는 매개체를 선택했다. 이들은 소리를 ‘살아있는 진동’으로 여기며, 죽은 자의 에너지를 악기 속 진동으로 전이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장례의식은 고대부터 이어진 ‘카야미(Kayami)’ 전통에서 유래되었다. 카야미는 망자의 이름, 성격, 생전 활동에 따라 맞춤형 악기를 제작하는 의식으로, 주로 망자의 넓적다리뼈, 늑골, 혹은 치아와 같은 단단한 유골 조각을 사용한다. 이 재료들은 나무나 동물 뼈와 함께 조합되어 장구의 테두리, 플루트의 몸통, 혹은 현악기의 튜닝핀으로 가공된다. 이때 악기의 모양은 단순한 악기 그 자체가 아니라 ‘혼의 거처’로 설계되며, 마치 관처럼 정성스럽게 다듬어진다.

이런 풍습은 단지 미신적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후에도 망자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공동체 중심 신앙에서 기인한다. 악기는 그 자체로 망자의 존재이며, 장례식에서 연주되는 곡은 그 사람만의 생애와 성격을 음악으로 번역한 기억의 언어다.

 

2. 유골로 만드는 악기 – 신성한 제작 과정과 장인의 의무

악기 제작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의식의 일환으로 간주되는 신성한 과정이다. 유골을 악기로 만드는 작업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부족 내에서 특별한 자격을 부여받은 ‘야차라(Yachara)’라는 장례 장인만이 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야차라는 목공 기술뿐 아니라, 고인의 영혼을 다룰 수 있는 주술적 능력과 정결한 삶의 태도를 갖춰야 한다.

제작 과정은 철저히 정해진 순서에 따라 진행된다. 먼저 고인의 시신은 의식용 불에서 화장된 뒤, 유골의 크기와 형태에 따라 어떤 악기를 만들지 결정된다. 넓적다리뼈는 플루트나 오카리나, 갈비뼈는 단소류, 이빨이나 치아는 북의 장식이나 타악기 고정 핀으로 사용된다. 나무는 생전 고인이 좋아했던 나무나 가족이 선택한 ‘영혼 나무’가 사용되며, 악기의 모든 부위는 수치(Shuchi)라 불리는 정화 의식을 거쳐야 한다.

이때 악기 내부에는 고인의 이름, 사망 일자, 삶의 업적을 상징하는 문양이 조각되거나 태워져 새겨진다. 악기가 완성된 뒤에는 고인의 가족에게 전달되며, 첫 장례식에서 한 번 연주된 후 보관하거나 제례 때마다 연주한다. 이 모든 과정은 공동체 전체가 목격하는 공개 의식으로 진행되며, 한 사람의 죽음이 곧 공동체 전체의 음악이 되는 순간으로 인식된다.

 

3. 소리로 기억하는 삶 – 공동체와 유골 악기의 문화적 역할

에콰도르 부족에서 유골 악기는 단순한 장례용 도구를 넘어, 공동체의 살아있는 유산이자 집단 기억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마을에는 조상들의 유골로 만든 악기가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보관되어 있으며, 중요한 제례나 의식이 있을 때마다 꺼내어 연주된다. 이때 사용하는 곡은 고인의 생전 업적, 가족사, 전쟁, 출산 등 공동체의 굵직한 사건과 연결되어 있으며, 노래가 아니라 악기의 소리 자체가 ‘말하는 영혼’으로 여겨진다.

특히 한 가문에서 만든 유골 악기는 그 집안의 후손이 대대로 물려받으며, 장례식뿐 아니라 출산, 성인식, 결혼 등 삶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 연주된다. 이는 죽은 자가 단절된 존재가 아니라, 살아 있는 가족의 일부로서 지속적인 교감을 유지한다는 상징적 장치다. 유골 악기를 연주하는 순간은 단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 혼이 지금 이곳에 있다는 증거를 재현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또한 이들은 악기를 보호하고, 일정 시간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경우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는 ‘안장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이는 혼의 순환을 인정하고, 집착 없이 죽음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전통의 일부다.

 

4. 변화 속의 지속 – 현대화와 유골 악기 전통의 재해석

21세기 들어 에콰도르 사회도 급속하게 변화하면서, 유골 악기 장례 풍습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도시화와 기독교 보급, 의료 장례 시스템의 확산으로 인해, 많은 부족 청년들이 이 전통을 잊거나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또한 정부의 공공보건 규제는 인체 유골의 예술적 활용을 제약하고 있으며, 외부인들의 시선도 전통 유지에 부담을 준다.

하지만 동시에 이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일부 문화 인류학자와 지역 예술가들은 유골을 실제로 사용하지 않고도, 기념품이나 공연 악기 형태로 의식을 재현하려는 시도를 진행 중이다. 또한 박물관과 전통 예술 교육기관에서 ‘혼을 담은 악기’라는 철학적 개념을 보존하며, 무형유산으로의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생태 장례, 친환경 장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골 악기라는 개념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예술적 장례’로 재해석되고 있다. 소리를 통한 추모, 창조적 장례 방식은 현대인의 감성에도 맞닿아 있어, 전통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 중이라 평가받는다.

 

결론 : 죽음을 노래하는 마지막 악장

에콰도르 부족의 유골 악기 장례식은 죽음을 두려움이나 단절이 아닌, 삶의 또 다른 형태로 확장시키는 감동적인 의례다. 인간의 유골이 하나의 악기로 다시 태어나고, 그 소리를 통해 기억되고 울려 퍼지는 이 전통은, 죽음조차도 공동체의 음악과 예술, 사랑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고인을 잊지 않기 위해 무엇을 남겨야 할까? 무덤? 사진? 아니면… 소리?
이 부족의 대답은 분명하다.
“그의 혼이 담긴 악기가 살아 있는 동안, 그는 결코 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