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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문화

망자의 이름을 다시는 부르지 않는 이유 – 알래스카 에스키모의 금기 장례

극한의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알래스카의 에스키모 부족(유픽, 이누피아트, 이누잇 등)은 척박한 환경만큼이나 독특하고 깊이 있는 장례 문화를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전통이 바로, 망자의 이름을 다시는 부르지 않는 금기다. 다른 문화권에서 죽은 자를 기억하고 이름을 부르며 추모하는 것과 달리, 에스키모 사회에서는 망자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영혼을 붙잡는 위험한 행위로 여겨진다.

그들은 죽음을 단절이 아닌 변형된 상태의 연속으로 받아들이며, 망자의 영혼이 새로운 형태로 환생하거나 자연의 일부로 녹아들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배웅하려 한다. 이름은 그 사람의 혼이 머물러 있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부르게 되면 영혼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거나, 공동체에 불행을 초래한다는 믿음이 깊게 뿌리내려 있다.

이 글에서는 알래스카 에스키모 부족의 장례 문화 중 특히 ‘이름을 금기시하는 이유’와 그와 관련된 금기 규칙, 장례 절차에서의 영혼 인도 방식, 망자의 기억을 전승하는 다른 방식, 그리고 이러한 전통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계승되거나 변화되고 있는지를 네 문단에 걸쳐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망자의 이름을 다시는 부르지 않는 이유 – 알래스카 에스키모의 금기 장례

 

1. 이름은 영혼의 실마리 – 망자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금기의 기원

에스키모 문화에서는 이름이 단순한 식별자가 아니라, 영혼 그 자체의 일부분이라고 여겨진다. 이름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그 존재를 사회 안에 연결시키는 도구지만, 죽고 난 뒤에는 그 이름이 영혼을 이승에 붙잡아 두는 사슬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샤머니즘적 사고에서 비롯되며, 사람의 혼은 육체와 함께 죽지 않고 일정 기간 이승을 배회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에스키모 사회에서는 망자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부르면, 그 영혼이 자신의 이름을 들은 것으로 착각하고 다시 이승에 머물려고 하거나, 불완전한 환생을 거쳐 병이나 재난의 형태로 공동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망자가 사망하면, 그의 이름은 즉시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오히려 “그분”, “떠난 자”, “눈처럼 사라진 이” 같은 은유적 표현으로 대체된다. 이름은 영혼이 떠나기 전까지 금기시되며, 이러한 침묵은 망자에 대한 경외와 영적 정결함을 유지하기 위한 공동체적 합의다.

 

 

2. 장례 절차 속의 침묵 – 이름 없이 진행되는 이별

알래스카 에스키모들의 장례 절차는 간결하지만 매우 상징적이다. 시신은 특별한 예복이나 관에 넣기보다는, 가죽으로 만든 전통 담요로 싸여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방식을 택한다. 보통은 눈 덮인 평원에 간단한 무덤을 만들거나, 일부 지역에서는 바위나 돌을 쌓아 만든 덮개 아래에 시신을 놓는 방식도 사용된다.

이 장례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철저한 침묵이다. 장례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가족들은 망자의 이름을 절대 언급하지 않으며, 슬픔은 눈물보다는 고요함으로 표현된다. 샤먼이나 노인이 중심이 되어 영혼이 사슴이나 북극곰, 바람 등 자연의 정령으로 환생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주문을 읊는다. 때로는 북을 두드리며 영혼이 떠나는 길을 밝히기도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이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침묵은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망자의 영혼이 미련 없이 자연으로 흘러가도록 도와주는 깊은 배려이자 신념이다. 말 한마디, 이름 한 글자가 영혼의 귀환을 막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결국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는 그들의 영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3. 기억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 이름 대신 남는 것들

망자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에스키모 사회는 조용한 방식으로 기억을 전승하는 독특한 추모 문화를 갖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방식은 상징물로 기억을 남기는 것이다. 고인이 쓰던 사냥도구, 손수 만든 물건, 혹은 옷의 일부를 보존하거나, 특별한 장소에 묻는 경우가 있다. 이 물건들은 이름 없는 ‘기억의 매개체’가 되어, 후손들에게 고인의 존재를 이야기해주는 비언어적 언어로 기능한다.

또한 일부 부족은 아기의 이름을 지을 때, 망자의 이름을 직접 따르지 않되, 그 이름의 뜻이나 발음을 약간 변형해 사용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누낙’이라는 이름을 ‘누나’ 혹은 ‘낙’으로 줄여 쓰면서, 직접적인 호출 없이도 그 의미를 계승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음으로써 망자의 영혼이 방해받지 않도록 배려하면서도, 공동체의 기억 안에 은밀히 저장하는 방법을 오랫동안 실천해 왔다.

 

 

4. 변화하는 장례, 지켜지는 금기 – 현대 사회 속 전통의 존속

현대화와 의료 시스템의 발전은 알래스카 에스키모 공동체의 장례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장례 또한 공식 시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하지만 망자의 이름을 금기시하는 관습은 여전히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심지어 도시로 이주한 에스키모 후손들조차도 이 전통만큼은 유지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런 전통이 유지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관습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름을 부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감정과 기억이 남겨진다는 공동체적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공동체에서는 디지털 기록이나 영상 추모 대신, 고인의 삶을 담은 그림, 수공예품, 전통 노래로 기억을 이어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기억하되, 붙잡지 않음’이라는 철학과 연결되며, 영혼의 자유를 존중하는 이들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결론 : 침묵이 지켜주는 죽음 이후의 평화

알래스카 에스키모들의 장례 문화는 이름조차 불러서는 안 된다는 극도의 조심스러움 속에서, 오히려 죽은 자에 대한 깊은 존경과 배려를 보여준다. 그들은 이름을 숨김으로써 망자의 영혼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평화롭게 흘러갈 수 있도록 돕는다. 말은 막지만, 기억은 흐르고 있다.

이러한 금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애도의 방식과는 다르지만, 죽음이라는 거대한 이별을 어떻게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마주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 망자를 말하지 않고도 기억할 수 있고, 불러내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다는 그들의 철학은 오늘날의 장례 문화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이름을 삼키는 그 침묵 속에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강한 추모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