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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문화

나무껍질로 만든 관에 담는 장례 – 미얀마 친족의 전통 관 제작 의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는 각 문화의 세계관을 가장 잘 드러내는 요소 중 하나다. 미얀마 북서부 산악 지대에 거주하는 친족(Chin people)은 죽음을 ‘자연으로의 회귀’로 받아들이는 독특한 철학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나무껍질로 만든 전통 관에 고인의 시신을 담아 장례를 치른다.

친족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생명의 시작과 끝이 모두 자연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플라스틱이나 금속으로 된 인공적인 물질은 죽은 자의 마지막 여정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다. 나무껍질로 만든 관은 단지 친환경적인 수단이 아니라, 삶의 순환을 상징하는 장례 철학의 핵심이다.

이 글에서는 친족의 장례 의식 중에서도 전통 관 제작과정에 집중하여, 이들이 어떤 나무를 선택하는지, 관을 어떻게 만들고, 그 과정에 어떤 의례와 공동체적 의미가 담겨 있는지, 그리고 이 장례 방식이 현대화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네 문단에 걸쳐 자세히 살펴본다.

 

나무껍질로 만든 관에 담는 장례 – 미얀마 친족의 전통 관 제작 의례

 

1 . 관은 나무의 영혼을 빌려온 것이다: 관 제작의 철학과 재료 선택

친족에게 관은 단순히 시신을 담는 도구가 아니라, 고인을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는 매개체다. 이들은 생전에 나무와 함께 살아가고, 죽어서도 나무껍질에 싸여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고를 공유한다. 이런 인식은 애니미즘적 세계관과 불교적 윤회 사상이 융합된 독특한 장례 철학에서 비롯된다.

관을 만들 때 사용되는 재료는 특정한 나무로 제한된다. 주로 사용되는 나무는 ‘타웅자르(Taung Zar)’ 나무로, 껍질이 두껍고 유연하며 방수성이 높다. 이 나무는 산의 정령이 깃든 나무로 여겨져 아무 때나 베지 않고, 반드시 마을 제사장이 나무와의 교감을 통해 채취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껍질은 해가 뜨기 전 새벽에 채취해야 하며, 고인을 위해 사용할 껍질은 절대 땅에 직접 닿지 않도록 관리한다. 나무껍질은 고인의 체형에 맞춰 곡선형으로 휘어 말리고, 내부는 야자잎, 뱀비껍질, 마른 이끼 등으로 채워 부패를 지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관은 단순한 수공예품이 아니라, 정령의 힘과 자연의 순환이 함께 담긴 ‘생태적 관’으로 기능한다. 관 자체가 고인을 다시 자연의 일부로 돌려보내는 의식이자, 마을 공동체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철학의 물리적 표현인 셈이다.

 

 

2 . 장인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관: 제작 절차와 공동체 역할

나무껍질 관의 제작은 공동체의 핵심 장인 몇 명에 의해 수행되며, 마을 전체가 함께 준비하는 협력적 작업이다. 고인이 사망하면, 가족들은 즉시 ‘팡라(Phang La)’라 불리는 장례 목수에게 제작을 의뢰한다. 이 장인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죽은 자의 몸을 자연으로 안전하게 되돌려 보내는 ‘영혼의 대장장이’로 여겨진다.

관 제작은 고인의 성별, 나이,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소 달라진다. 예를 들어, 마을 원로의 경우에는 껍질 관에 전통 문양을 새기고, 나무 수액으로 바니싱을 하여 보존력을 높이기도 한다. 젊은 청년이 죽었을 경우에는 붉은 실로 관을 묶어 미련과 슬픔을 봉인한다는 의미를 담기도 한다.

제작에는 보통 2일에서 3일이 소요되며, 가족과 이웃들은 음식을 나르고, 장례용 천과 식물을 준비하며 함께 작업에 참여한다. 관이 완성되면, 마을 중심에서 의식을 치르고 관이 공개된다. 이 과정에서 라마승 또는 마을 제사장이 관에 축복을 부여하며, 고인의 영혼이 이 관을 통해 평화롭게 이승을 떠나기를 기도한다.

이처럼 친족의 장례는 단지 가족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죽음이라는 사건을 함께 정리하는 사회적 의례다. 관 제작이라는 노동은 고인을 향한 마지막 예우이자, 삶과 죽음이 자연 안에서 순환한다는 믿음을 실천하는 문화적 행위로 자리 잡고 있다.

 

 

3 . 장례 당일의 의례와 관의 상징적 역할

장례 당일, 완성된 나무껍질 관은 마을 주민들의 어깨에 들려 고인의 집에서 장례 장소까지 운반된다. 이때 관을 향한 애도와 찬양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마을의 샤먼은 관에 향을 피우고, 죽은 자의 이름 대신 ‘산을 향한 자’라는 호칭으로 고인을 부른다. 이는 고인이 산의 품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의미다.

장례식은 전통 북과 피리, 타악기 연주 속에 진행되며, 고인의 일생을 읊는 송혼 구절이 이어진다. 이때 관은 단순한 시신 운반 도구가 아니라, 죽은 자의 마지막 ‘집’이자, 자연으로 가는 문이다.
관은 죽은 자의 영혼을 안전하게 산 정령에게 인도하는 배처럼 여겨지며, 관을 태우거나 묻기 전까지는 함부로 만지거나 흔들어서는 안 된다.

관은 보통 마을 외곽의 숲속에서 화장되거나, 나무를 엮어 만든 선반 위에 놓여 하늘 장례 형태로 노출되기도 한다. 이 선택은 고인의 유언, 가족의 전통, 자연 조건에 따라 다르게 결정된다. 관이 불타거나, 자연 속에서 해체되기 시작하는 순간은, 공동체가 고인을 보내는 최종 이별의 시간이다.

이처럼 친족의 장례식에서 관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영혼의 탈 것,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문, 그리고 공동체가 죽음을 수용하는 상징적 도구로서의 다층적 의미를 지닌다.

 

 

4 . 현대화 속 전통 관 장례의 변화와 계승

오늘날 미얀마 사회 전반이 도시화와 종교 개혁, 경제 변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친족의 전통 장례 문화 역시 점차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플라스틱이나 콘크리트 관을 사용하는 현대 장례식이 일부 도시화된 지역에서 유입되면서, 나무껍질 관은 ‘불편하고 오래 걸리는’ 방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청년층 사이에서는 나무껍질 채취나 전통 장인의 기술을 배우려는 이들이 줄어들고 있으며, 산림 보호 법률이 강화되면서 특정 나무의 채취가 제한되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은 관 제작이라는 전통의 계승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동시에, 전통을 보존하려는 움직임도 분명히 존재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나무껍질 관을 만드는 과정을 문화 교육 프로그램에 포함시키고, 학교에서 장례 문화를 주제로 한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국제 민속 연구자들의 관심으로 친족의 관 제작 방식이 다큐멘터리와 민속 박람회에 소개되면서, 전통의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친족 공동체는 관의 외형은 현대화하더라도, 철학적 핵심인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정신은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새로운 장례 문화를 실험하고 있다.

 

 

결론 : 껍질로 감싸는 죽음,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삶의 마지막 예절

친족의 나무껍질 관 장례는 자연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귀향의 장소로 여기는 문화적 지혜를 담고 있다.
관을 만들기 위해 나무의 껍질을 빌리고, 그 안에 삶을 담아 보내는 과정은 단지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순환하는 세상의 질서를 실천하는 행위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친족은 관을 통해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를 자연 안에서 완성하며, 고인을 다시 숲으로, 바람으로, 나무로 되돌리는 아름다운 배웅을 이어간다.
그들의 전통은 우리에게 묻는다.
죽음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그리고 그 마지막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